눅19:45-46
어느 집안에 들어갈 때 그 집이 아주 엉망으로 어지럽혀 있으면 대부분 사람들이 “꼭 도둑놈 소굴 같다”라고 말합니다. ‘집’과 ‘소굴’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에 가신 예수는 그 성전이 강도의 굴혈 즉 강도의 소굴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무엇을 보고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예수를 믿는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집’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강도의 소굴이 되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성전을 더럽히는 사람을 강도라고 하셨습니다.
강도는 남의 것을 빼앗는 자입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성전을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어 결국 사람들은 성전을 통해 돈을 벌기에 급급했고, 기도하는 일은 등한히 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이방인의 뜰에서 장사하도록 한 것은 이방인들이 성전으로 나와서 기도하는 것을 방해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 강도입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은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자기의 이익을 삼는 도구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드려야 할 영광을 사람이 가로채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즉 예수께서 말씀하신 강도의 굴혈이란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없고, 기도가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또한 강도들은 굴혈 즉 소굴에서 한 집단으로 삽니다. 강도의 소굴에서는 두목과 졸개가 있고, 강도짓을 계획적, 지속적으로 합니다. 오직 자기 이익만 챙기는 것이 강도의 굴혈입니다.
예수는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는 열정이 있습니다.
예수는 “만민”에 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예수는 성전에 모든 만민이 나아와서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예수는 이 세상 모든 만민을 위하여 사역하시는 분입니다.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 되지 않고 소수의 사람들만의 성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하나님과 통하는 “기도”를 강조하셨습니다. 성전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통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신 곳에 사람들이 나와서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는 삶을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열정이 있습니다. 집이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녀들이 서로 헌신하고 사랑하면서 함께 위로를 얻고, 평화를 누리는 곳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전인데 이 성전 안에서는 하나님의 집으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위로와 힘을 얻고 평강을 얻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성전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만민을 향한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만민에게 복음이 전파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직 내 집, 내 식구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마음은 거룩한 성전의 특징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족속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의 문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나의 고백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의사소통이 잘 되는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나의 소원만 아뢰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말씀에 대해 믿음과 순종으로 응답하는 쌍방향 소통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을 위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집을 위한 열정이 있다는 것은 그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헌신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소굴에서는 오직 자기 이익만 추구하지만 집에서는 가족을 위한 사랑과 헌신이 나옵니다. 다른 형제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하여 희생하며 섬기는 삶을 사는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의 집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모든 만민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