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1:14-17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통하여 사람들은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아주 화려하게 포장된 선물을 받지만 사람들은 그 선물을 받을 때 포장지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을 받는 것입니다. 껍데기보다는 알맹이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는 진정한 성전의 의미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오셨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 성전 안에 성전이 있는 모습입니다. 마치 겉의 포장과 내용물이 있는 모습입니다.
1.외형적 건물 성전은 성전의 진정한 기능이 없었습니다.
건물 성전 안에 있던 대제사장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건물 성전에 취해 있는 그들은 그들 앞에 나타나시고, 그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예수를 보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예수의 하시는 일을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외형적 성전에 매인 이 사람들은 성전에서 사람들의 잘못을 열심히 살폈습니다. 이들은 아이들이 성전에서 예수를 향하여 뛰고 찬양하는 것에 대해서 분노했습니다. 율법과 전통에 매여 있는 이들에게서 사랑과 용서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분명한 사실은 죄인을 위하여 오신 예수는 사랑과 용서로 인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건물 성전에 매인 사람들은 주님을 향한 찬양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오히려 어린아이들이 예수를 향하여 호산나 찬양하는 소리를 막으려고 했습니다. 성전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의식적인 노래는 있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높이는 온전한 찬양이 없었습니다.
2.성전 속의 성전이신 예수는 성전의 기능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는 성전에서 그 앞에 나온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영과 육으로 눈이 어두운 사람의 눈을 뜨게 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건물은 있으나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 사람이 소경입니다. 예수는 성전에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저는 자의 다리를 온전케 하셨습니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에서 그만큼 불편하고, 할 일을 다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성전이신 예수는 저는 자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자로 활동할 수 있도록 바르게 세워 주셨습니다. 성전은 사람을 온전케 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찬양을 온전케 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예수께서 사람들에게서 호산나 찬양을 받는 것을 보고 성전에까지 따라와서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아이들이 알고 외쳤든, 모르고 외쳤든 이 외침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만약 장난치는 정도로 호산나를 외쳤다고 해도 그 외침을 온전케 하신 것이 바로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3.성전 된 우리에게 참된 성전의 기능이 있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성전 된 성도들은 외형적인 것을 중시하면 안 됩니다. 건물성전의 견고함, 화려함은 세월의 흐름 속에 다 사라집니다. 형식화된 신앙은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소경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가치를 발견해야 합니다.
성전 된 우리는 연약한 자를 치유하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성전에서 나의 유익만을 추구하면 안 됩니다. 연약한 자를 바라보며 그들을 세워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성전은 만민이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고 응답을 받는 곳입니다. 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온전케 해 주심을 알고 모든 일을 믿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는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습니다. 내가 알든 모르든 오직 주의 이름을 높이는 일만 시작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찬양을 온전케 하시고, 그 이름을 높이는 일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 된 성도들은 형식만 있는 껍데기 성전이 아니라 주의 이름의 능력으로 사람을 세우고 온전케 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알맹이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