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16:60-63
하나님께서 사람과 관계를 맺으실 때 취하시는 방법은 둘 사이에 서로 약속하는 언약을 세우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배신한 유다의 회복을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세우십니다.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을 맺은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1.하나님은 유다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와 새롭고 영원한 언약을 세우십니다(60). 하나님은 이전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다시 유다와 영원한 언약을 세웁니다. 이사야는 영원한 언약이라고 했고(사55:3), 예레미야는 새 언약이라고 했습니다(렘31:31). 율법언약이 아니라 새롭고 영원한 언약입니다. 유다의 회복은 언약을 세우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부끄러움을 아는 백성으로 세웁니다(61).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의 당사자로서 유다는 부끄러움을 알아야 합니다. 그 부끄러움은 사람과 세웠던 “네 언약” 때문입니다. 사람과의 언약은 신실하지 않습니다(왕하18:14). 신실하지도 않으며, 영원하지도 않은 언약을 맺었던 사실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유다가 영원한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합니다(62). 하나님을 아는 것은 히브리어로 ‘야다’라는 말인데 이 말은 지식적 정보를 가진 것이 아니라 결혼같이 깊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에는 용서가 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을 배신했으나(겔16:32)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찾아 사랑합니다(호3:1).
2.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는 영원한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영원한 언약의 개념은 하나님 속에 이미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탄생한 일은 세상에 태어나심이 아니라 나타나심입니다(요일3:8). 바울은 그 나타나심은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라고 강조합니다(롬3:21).
예수는 새 언약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는 새 언약을 세우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잘 알고 계십니다. 예수는 마지막 유월절 만찬 자리에서 성만찬의 규례를 세우시며 그의 피가 상징하는 잔이 새 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눅22:20). 우리는 예수의 피를 믿음으로 받아 마시면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에 참여한 자가 됩니다.
예수는 영원한 언약의 중보자로서 사역하여 언약의 효력이 발생하게 합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잇는 중보가 됩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새 언약의 근거입니다(히9:15). 예수의 중보로 우리는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습니다. 영원한 기업의 약속이란 유산은 영원한 구원을 말합니다(히5:9).
3.우리는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을 체결한 자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체결된 영원한 언약의 당사자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당사자로 사는 일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는 삶이며, 또 그 언약을 위하는 삶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새 언약의 일꾼이라고 강조합니다(고후3:6). 언약에 대해 필요한 일은 약속을 지키는 신실함입니다. 언약을 잘 지켜야 합니다(시15:4).
영원한 언약을 받은 자이나 근본은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언약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살고 있습니다. 자기를 돌아보는 염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돌아보며 회개합니다(욥42:5-6). 자기의 근본을 돌아보는 삶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유다는 근본을 알고 행동해야 합니다(겔16:3).
어린 양 예수께 신부로 영접받은 자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은 도망한 아내를 되찾아 와서 다시 사랑하며 세우신 언약입니다. 영원한 언약을 누리는 자는 예수의 신부이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이 곧 어린 양의 아내입니다(계21:10-11). 새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이며, 그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바벨론 디아스포라 백성은 새 언약을 받았습니다. 영원한 언약은 자비와 용서에서 나오는 언약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언약에 참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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