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2:10-11
예수를 향한 소망을 가진 사람은 예수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고 삽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징계를 받을 수 있지만 그 고난의 과정을 통해 연단되어지고, 이 사람은 결국 의와 평강이란 소망의 열매를 누리게 됩니다.
1.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에게서 의와 평강을 추구합니다.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은 사람의 집단적인 힘과 능력으로 의와 평강을 추구했습니다. 니므롯을 중심으로 모인 무리들은 그들의 힘으로 바벨탑을 쌓으면서 그들의 이름을 드러내고, 홍수의 위험을 피하려고 했습니다.(창11:4) 사람의 힘으로 자기들의 의를 드러내고, 그 안에서 평안을 누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종교적 열심을 가지고 율법을 지키는 일로 그들의 의와 평강을 추구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잘 지켜서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이 된다고 믿었습니다.(눅18:11) 그러나 사람이 율법의 모든 규정을 지켜도 결코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을 인정받을 수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의인이 없음을 선포합니다.(롬3:10)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의와 평강을 추구합니다. 예레미야 당시 거짓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징계로 나타난 상처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에게 평강을 외쳤습니다.(렘8:10) 죄를 범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신 하나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고, 사람들에게 말로만 평강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이었습니다.
2.하나님은 우리가 소망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이라는 면에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의 사랑하는 아들로 받아들이고, 늘 권면의 말씀을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징계하는 것도 우리의 유익함을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는 질병을 고쳐주지 않으심도 사도 바울의 유익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고후12:7)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는 목적을 가지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로 부정해진 사람과 함께하려고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셨습니다. 범죄 한 유다는 버림받은 핏덩이 아이 같이 부정했지만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께 속했다고 하셨습니다.(겔16:8)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거룩함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징계로 연단합니다. 징계는 받는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입니다. 그러나 징계의 진정한 의도는 하나님의 아들을 연단하여 그를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징계를 통하여 사람의 마음을 연단하며(잠17:3), 연단으로 소망을 이루게 합니다.(롬5:4) 연단을 통한 사람이 거룩하고, 강한 사람이 됩니다.
3.우리는 소망의 열매를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먼저 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열매를 얻으려면 심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의의 열매를 바라본다면 화평을 심어야 합니다.(약3:18) 화평으로 심는 것은 화평하게 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죄인,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평을 심어야 합니다.(엡2:16-17) 도고, 복음전파, 말씀의 권면 같은 일이 화평을 심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신뢰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심고 물을 주지만 하나님은 자라게 합니다. 하나님이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의 과정 속에 있는 징계나 시험을 이상히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벧전4:12) 하나님의 일은 오직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일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사하게 받아야 합니다.
연단을 받으며 길이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소망의 사람은 소망의 열매가 맺히기까지 길이 참는 사람입니다.(약5:7) 기다린다는 것은 심었던 일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그 결과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사람은 그 고난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고난이 성장의 기회임을 알고 잘 견디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의와 평강은 예수를 소망의 대상으로 삼고, 소망이 이루어지기까지 징계 중에서도 하나님의 아들로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열매로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