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5:11-14
사람에게는 시간이 지나면 그에 따른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인 신자들 중에 아직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있음을 말합니다. 신앙은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해야 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1.유대인 신자들 중에는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듣는 것이 둔했습니다. 이들은 말씀의 초보에 대해 다시 가르침을 받아야 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귀신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애를 씁니다. 듣는 것이 둔하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으며, 말씀보다는 세상의 다른 것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막4:18-19)
때는 오래 되었는데 성장이 없었습니다. 히브리인 신자들의 문제 중 하나는 그들이 믿기는 하지만 신앙의 성장이 잘 되지 않은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역시 믿은 지 오래 되었지만 그만큼의 성장이 없었습니다.(고전3:1-3) 믿음을 가졌지만 아직 그의 삶이 육신에 속해 있는 사람은 성장이 없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 그 마음과 목적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못했고(막12:24), 바리새인들 역시 하나님의 아들을 알지 못했습니다.(요5:38-39) 예수를 모르는 것이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2.예수는 의의 말씀입니다.
의의 말씀은 말씀의 초보입니다. 즉 말씀의 기본 원리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신 예수는 말씀의 기본이고 원리입니다. 유대인들이 끝없는 족보를 만들고 자기들이 그 후손임을 자랑할 때 바울은 디모데에게 기본을 강조합니다.(딤전1:3-4)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본입니다. 이것이 빠지면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의의 말씀은 단단한 음식입니다. 이것은 장성한 자의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늘로서 내려 온 생명의 떡을 말할 때 사람들은 말씀이 어렵다고 했습니다.(요6:60) 이것이 말씀을 소화시킬 수 없는 영적 어린아이들의 모습입니다. 믿음이 장성한 사람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그 말씀에 자기를 헌신합니다.(요6:68-69)
의의 말씀은 선악을 분별하게 하는 힘입니다. 장성한 자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합니다. 욥은 하늘에 계신 대속자를 알았고(욥19:25), 환란 때에 선한 것을 분별했습니다.(욥1:21) 예수 없이 선악을 분별만하면 남을 정죄하기 쉽지만 예수로 말미암아 선악을 분별하면 연단을 견디고 선을 이루게 됩니다.
3.의의 말씀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야 합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하는 일은 이해력 문제가 아니라 영적 문제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요14:26) 율법을 다 알아도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면 결코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세상에 대한 욕망에서 나오는 나의 선입관과 상식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은 들려지는 것이기 때문에 듣는 일을 잘 해야 합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가르침을 받는 일이 중요합니다. 사람의 믿음은 말씀을 듣는 일에서 분명해 집니다.(롬10:17) 그러나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 보다 자기 생각이 우선이기 때문에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각을 사용해야 합니다. 지각을 사용한다는 것은 영적 분별력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유다 왕 여호사밧은 영적 분별력이 있으면서도.(왕상22:7) 그것을 끝까지 잘 사용하지 못하고 북 이스라엘 왕 아합과 함께 전쟁하러 나갔습니다. 지각을 잘 사용하지 않으면 영적 분별력이 없어지고 또 쉽게 미혹을 당하게 됩니다.
신앙적 면에서 아무리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어도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는 의의 말씀입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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