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2:22-32
사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의 과학과 기술을 발달시키지만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아들을 살리심으로 그를 믿는 자에게 생명을 줍니다. 생명을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부활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생명에 대해 정하신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사망의 권세 아래에 있게 된 사람들을 위하여 아들을 보내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다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본래의 마음은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애3:33)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이 사람을 살리는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요6:39)
하나님은 미리 아시기 때문에 아들을 사망에 내어 주셨습니다. 사망이 사람을 두렵게 하기는 하지만 생명의 하나님은 그 사망을 어떻게 처리할 줄 아시기 때문에 아들이 사망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셨습니다. 그의 백성을 만드시는 과정에서 요셉이 형들에게 팔림을 당하는 일을 허락하신 것과 같습니다.(창50:20)
하나님은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습니다. 사람들은 사망의 고통을 스스로 풀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의 노력들은 지금도 사망의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없습니다.(히9:27) 사람은 사망의 고통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그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냅니다.
2.예수는 생명을 누리는 분으로서 생명의 일을 합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증언하셨습니다.(22절) 예수께서 땅에서 열심히 하신 일은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을 증언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아들의 사역에 대해 미리 예언하셨습니다.(사9:2) 하나님의 아들은 생명의 빛으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권세를 보여주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는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는 바로 생명입니다. 생명은 사망에 매이지 않으며, 빛은 어둠에 갇히지 않습니다. 애굽 왕 바로는 이스라엘을 가두어두려고 하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이끌어 내실 때 그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생명의 빛은 무엇에도 갇히지 않습니다.(요8:12)
부활하신 예수는 그를 믿는 모든 자의 주가 됩니다. 다윗은 먼 후대에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라고 고백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이전과 이후의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서 오직 “주”가 됩니다. 모든 시대의 생명을 바라는 자들은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3.부활을 믿는 우리도 생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생명의 주와 동행해야 합니다. 다윗은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25)라고 고백했습니다. 부활의 예수를 신뢰한다는 것은 예수께서 내 우편에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주님이 곁에 계심을 믿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든든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마28:20)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확신하고 할 일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생명을 누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은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26)라고 합니다. 집행을 앞 둔 사형수에게는 기쁨, 즐거움, 희망이 없습니다. 살고 있지만 생명을 누리지 못합니다. 생명의 주를 영접한 자는 생명의 주님으로 인해서 기쁨을 얻고 희망에 거하는 사람이 됩니다.(시23:4)
생명을 전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생명의 맛을 본 자는 생명의 부활을 말하게 됩니다. 다윗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본 자로서 증거 했고,(31)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자로서 증거 합니다.(32) 예수의 부활이 곧 나의 생명이 되었음을 아는 사람은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생명의 일입니다. 죽음의 문제를 영생으로 해결하는 것이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생명을 누리고, 항상 생명을 전파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