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성전에서 외식하는 자를 꾸짖으신 후 헌금함 앞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생활비 전부를 넣은 가난한 과부처럼 하나님이 받으시는 전적 헌신의 삶이 필요합니다.
1.하나님 앞에 드리고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의 풍족한 중에서 일부를 드리는 사람은 드림 자체가 큰 부담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의 모든 것을 드리게 되는 사람은 드릴 때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생각이 없는 드림, 습관적인 헌신을 하는 사람은 드리는 행동자체가 의식적이고, 형식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드림 자체를 공로로 삼고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드렸다는 사실이 자신에게 위안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없는 기부는 자기의 의를 세우고 스스로 만족할 뿐입니다. 헌금을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것이 우리 신앙의 전부는 아닙니다. 신앙이란 삶 전체의 문제입니다.
드리는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외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남에게 보이는 수단 방법이 될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가장 싫어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일로 자기의 영광을 삼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입니다.
2.예수는 사람의 드림을 살펴보셨습니다.
예수는 드리는 자의 일부가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살핍니다. 예수는 부자와 과부의 처지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헌금을 드린 액수를 보고 많이 드린 사람을 칭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사람이 어떤 처지에서 어떻게 드렸는지 그 상황을 이해하시고, 그를 전체적으로 살피십니다.
예수는 사람들의 드림을 받으십니다. 예수께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보신 이 행동은 그들이 드리는 것을 받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죽은 우상은 사람들이 무엇을 드려도 받을 수 없지만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사람들이 드리는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는 헌금함 앞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과 부자들의 헌금을 보여주시면서 가진 것이 적은 사람도 하나님께 잘 드릴 수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지식과 힘과 능력 등 모든 것이 부족한 사람도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3.우리는 삶의 전체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내게 있는 것이 부족하다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의 삶 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이런 차이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의 제자는 세상에서 무엇을 많이 가졌는지 적게 가졌는지 그것 때문에 염려하거나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게 있는 것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과부의 두 렙돈이란 자기의 생활비 전부였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생활을 포기하고 드리는 전전 헌신의 삶을 사용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연약해도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일하신다는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적 드림으로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표현을 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드림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드리는 일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바나바의 헌신은 당시의 많은 과부들의 가난을 돕는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비록 작다고 해도 하나님께 전체를 드리는 헌신하는 마음이 가치 있는 사람이며, 주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복 된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