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완전을 추구하고, 복을 구하며, 자기의 의로움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예수는 철저하게 자신을 정결케 하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외식하고 있음을 말씀하시며 “화 있을찐저”라는 무서운 경고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1.서기관과 바리새인 겉을 깨끗히 하는 일에 열심입니다.
이들은 그릇으로 비유할 때 속은 더럽고 겉만 깨끗한 사람입니다. 안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은 음식을 담을 그릇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겉에만 관심을 두는 사람은 다른 사람 앞에서 체면과 자기 위신을 생각하고, 남에게 책잡히지 않으려는 목적으로만 자기를 살필 뿐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정결의식을 행합니다. 외출 후에 손발을 씻는 것,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일이 그들의 신앙의식이었습니다. 위생적으로 너무나 필요한 일이지만 이것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로 여기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거룩은 물로 씻어 깨끗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정결함을 위하여 이방인을 구별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부정하다고 여기는 이방인과 함께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구별하여 부정한 자와 어울리지 않음으로 깨끗해질 수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지만 예수는 사마리아 사람과 함께 하셨습니다.
2.예수는 보다 먼저 깨끗하게 해야 할 ‘안’을 강조하셨습니다.
육보다는 혼이 안이며, 혼보다는 영이 안입니다. 육은 혼을 담는 그릇, 혼은 영을 담는 그릇입니다. 육체에 더러운 때가 묻어서 사람이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에 있는 것 때문에 더러운 사람이 됩니다.(마15:18-19) 겉보다 중요한 것이 안입니다. 안의 정결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겉 사람이 아니라 속 사람을 깨끗게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을 겉사람과 속사람으로 구분합니다.(고후4:16), 그리고 베드로는 사람을 숨은 사람과 드러난 사람으로 구분합니다.(벧전3:4) 어떻든 사람은 속 사람과 겉 사람으로 구분해서 생각하고, 속 사람의 깨끗함을 위하여 힘을 다해야 합니다.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의도가 안의 문제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위는 사람들 앞에서 죄를 짓지 않은척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의 의도는 숨어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행위로 자기의 의를 드러내면 그것은 오히려 자기를 더럽히는 것이 됩니다.
3.우리는 어떻게 하면 안을 깨끗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안을 깨끗하게 하는 일은 사람에게 보이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세를 가져야 내 안을 깨끗하게 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고후7:1)
깨끗하게 하는 방법은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히9:14) 죽은 행실을 깨끗하게하는 것은 오직 예수의 피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의 피가 우리를 죄의 더러움에서 정결하게 되도록 만듭니다.
말씀으로 정결케 됩니다. 예수는 요15:3에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영이 깨끗해지는 방법입니다. 예수의 말씀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말씀은 모든 사람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눈 먼 바리새인, 어둠의 사람은 안을 보지 못합니다. 진리의 빛 가운데서 눈을 뜬 자가 자기의 안을 살피며, 내면을 정결하게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