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1:36-37
믿음이란 세상이 주는 모든 도전에 대해 응전하는 것입니다. 토인비는 인류의 문명을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으로 말했습니다. 믿음이란 대적에 대한 승리인데 그 승리의 과정에서 응전하는 삶을 사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1.믿음은 늘 많은 도전을 받습니다.
믿음은 견디기 힘든 여러 가지 형태의 도전을 받습니다. 조롱과 공격을 받으며, 죽임당하고, 궁핍하게 살며, 학대를 받습니다. 예레미야는 투옥 되었으며(렘38:6) 이사야는 므낫세 왕에게 톱으로 잘려 죽었으며, 하박국은 궁핍 속에 있었습니다.(합3:17) 믿음의 사람들이 받는 궁핍, 환난, 학대란 견디기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믿음을 도전하는 배후 세력은 사탄입니다. 사탄의 목표는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과 믿는 자 사이를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믿음을 도전하는 일에 드러나는 것은 사람들이나 어려운 환경이지만 그 배후세력은 사탄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애를 씁니다. 욥에게 주어진 고난은 사탄의 작품입니다.(욥2:2)
그러나 믿음을 도전하는 세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사탄이 가져다주는 궁핍과 환난과 박해를 우리가 견디기 힘들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참소하는 사탄에게 한계를 정하셨습니다.(욥2:6) 사탄은 우리의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합니다.(마10:28) 사탄의 한계가 우리가 고난을 이길 근거가 됩니다.
2.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이 도전에 대해 응전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응전하는 자를 견고케 세웁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보낼 때 그가 전하는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들 앞에 든든하게 세우셨습니다.(렘1:18) 쇠기둥, 놋 성벽이란 말은 그만큼 든든하고,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변변치 않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견고케 하여 도전에 대해 응전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큰 능력으로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응전하는 사람이 응전할 때 큰 도우심의 능력으로 함께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그 모든 고난을 이겨나갈 수 있었습니다.(고후4:7-9) 하나님의 능력의 도우심으로 믿음의 사람은 환난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망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은 응전한 자가 승리에 참여하게 합니다. 응전하는 사람이 환난의 배후세력인 사탄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스스로 세상을 이기신 분으로서 제자들에게 담대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요16:33) 우리의 힘으로 세상에 응전하고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의 승리에 은혜로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3.세상의 도전에 대해 응전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응전하는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지도 않고, 함께하지도 않은데 자기 의지로 나아가면 안 됩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신의 정탐꾼이 죽은 후 회개한다고 하며 가나안으로 가지만 하나님은 함께하지 않았습니다.(민14:42-44)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없는 자의 응전은 가치 없는 응전일 뿐입니다.
응전의 대상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과 환경을 통하여 오는 도전 뒤에는 배후 세력이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가 싸워야 할 대상을 설명합니다.(엡6:12) 통치자들, 권세들, 세상 주관자들은 힘과 권력이 있으며, 그들 뒤에는 하늘에 있는 악의 영 곧 사탄과 귀신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복음이 그들을 이기는 무기입니다.
응전의 유익함을 찾아내야 합니다. 응전의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고통이 있는 고난에서 유익을 찾으면 응전하는 자가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시119:71) 그리고 응전 이후의 결과에 대한 소망을 가지는 것도 힘든 과정을 잘 이기게 합니다.(롬8:18) 과정에서 오는 유익함, 결과의 유익함을 기대하며 응전해야 합니다.
믿음이란 이 세상에 가져다주는 도전에 대해서 굴복, 타협, 회피하지 않습니다. 그 도전에 대해 응전하며 삽니다. 응전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