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7:54-60
성령으로 충만한 스데반은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는 일 때문에 더욱 사람들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사역자들에게 가장 큰 복입니다. 예수의 부활을 기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1,스데반은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스데반은 복음을 전하다가 사람들의 미움을 사지만 하늘에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보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 주목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는 것이 믿음의 사람이 가지는 시각의 방향입니다.(시121:1-2)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스데반은 하늘에 있는 인자를 증거 합니다. 인자라는 말은 사람의 아들이란 말입니다. 스데반은 사람의 아들이 하늘에 서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인자는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인자를 말하므로 듣는 사람들은 더욱 분노하고 돌을 던지지만 이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므로 감출 수 없었습니다.
스데반은 주 예수께 그의 영혼을 드립니다. 스데반은 사람들이 던지는 돌을 맞고 쓰러지면서 자기의 영혼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자기 영혼을 드린다는 것은 그 분을 신뢰하는 것이며, 그 드림이 가장 안전한 일임을 아는 것이고, 또 부활의 주님께서 생명을 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자기의 영을 부탁했습니다.(시31:5)
2.부활하신 예수는 하늘에서 스데반을 바라보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서 계셨습니다.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는 그의 사역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사람이 되셨던 예수는 원래부터 가지셨던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그의 사역을 계속하고 있음을 말합니다.(히1:3)
예수는 사람의 아들로 하늘에 존재하십니다. 하늘의 예수는 땅에 있던 모든 흔적이 없이 영광만 누리지 않습니다. 부활의 예수는 땅에서 가지셨던 인자라는 신분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계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그의 손에 있는 못 자국 흔적을 보여주셨습니다.(요20:27) 부활의 주님은 땅에 있는 그의 사람들과 관계를 끊지 않으십니다.
부활의 예수는 복음의 사역자의 영혼을 받아주십니다. 예수는 그의 사역자들의 영혼을 책임져 주십니다. 부활의 예수는 하늘에서 제자들을 위한 거처를 준비해 놓으셨고(요14:2) 또 땅에 있는 교회의 사역자들의 영혼을 받으시고 위로하며, 인도하십니다.(계7:16-17) 부활의 예수는 복음을 위하여 일하는 자들의 영혼을 책임져 주십니다.
3.부활의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를 바라보는 삶은 하늘의 예수께서 관심을 가직 바라보아 주시는 삶이 됩니다.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곧 죽음 가운데서 생명의 길을 찾는 것입니다.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가장 귀한 관계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살 길을 찾은 것입니다.
부활의 예수께 영혼을 부탁해야 합니다. 육체로 많은 것을 누려도 영혼이 쇠약한 사람은 가장 불쌍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육체의 필요를 위해서는 열심히 구했지만 영혼의 유익은 없었습니다.(시106:14-15) 생명의 주님께 나의 영혼을 드릴 수 있는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삶입니다.
부활하신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스데반은 자기에게 돌 던지는 자를 위하여 용서를 빌었습니다. 영혼을 주님께 드리는 자는 자기를 향하여 돌 던지는 사람까지 용서하는 마음을 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위하여 용서하신 것과 같이 남을 위하여 용서하는 마음을 품는 것은 부활의 주님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우리가 누려야 하는 복입니다. 스데반처럼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며, 그를 인하여 위로와 생명을 얻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