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설교하신 예수는 하늘의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이 마지막, 공개적인 예수의 기도는 그 때가 언제인지, 그리고 어떤 일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아시는 분으로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1.예수는 때를 아시는 분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때를 아셨습니다. 때를 아는 사람은 그 때에 맞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때를 알지 못하면 두려움, 염려 근심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시대의 표적을 분변하지 못했습니다.(마16:3) 예수는 자신의 영화로움을 통하여 아버지가 영화롭게 될 때가 되었음을 아셨습니다.
예수는 때에 맞는 자기의 일을 완수하려고 하십니다.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때가 되었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보내어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갈4:4) 사탄의 유혹으로 죄를 짓고 멸망당하게 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셨습니다.
예수는 아버지의 영화를 위하여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화를 위하여 일하는 예수는 자기를 희생하는 삶으로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천하의 모든 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 인생의 성공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자기의 때를 결정하고 살지만(약4:13) 성공한 인생은 하나님의 영화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2.예수는 때를 아는 자로서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의 기도 동작은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습니다. 우러러 바라보는 것은 도움의 방향을 아는 것입니다.(시121:1-2)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는 자세입니다.(단4:34) 단순히 하늘이라는 어떤 공간적인 개념보다는 존귀하신 하나님을 우러러 본다는 의미에서의 위쪽이며, 아버지와의 영적인 교제를 상징합니다.
“아버지여”라고 부른 것 즉 헬라어 '파테르'라는 단어는 아람어 '아바'를 전제로 한 단어입니다. 우리말 '아빠'와 비슷한 어감을 줍니다. 이는 예수와 하나님의 지극히 친밀하고도 유기적인 관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며,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신분으로 아버지께 구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는데 예수는 아들의 영화와 아버지의 영화가 같이 연결되어 있음을 말씀합니다. 가룟 유다가 배반하여 나간 후에 이 말씀을 이미 하셨습니다.(요13:31) 즉 예수는 그의 희생을 통하여 아버지의 사랑이 성공하는 것을 영화로움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3.때를 아는 사람으로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삶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솔로몬은 천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어 이루어짐을 깨닫습니다.(전3:11) 하나님의 때를 아는 것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노아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깊게 해야 합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으면 아버지를 향한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롬8:15)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아들로서 아버지를 신뢰하고, 아버지를 사랑하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이 가장 귀한 사역입니다.
희생과 사랑의 사역으로 아버지의 영화를 드러내야 합니다. 세상의 영화를 위하여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으로 잘 꾸미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화는 금과 보석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화는 그의 사랑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고 사역할 때 아버지의 영화로움이 드러나게 됩니다.
때를 정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그 때를 이루기 위하여 기도하는 아들처럼 세속적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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