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말을 듣고도 이틀을 더 유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사랑이 계획적이고, 그의 행동이 전략적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사랑이 맹목적 사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1.예수는 나사로의 질병에 대해 전략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는 나사로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광을 받는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나사로를 치유하는 사건은 그리 큰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는 주변 사람들에게 죽음에서 부활이라는 진정한 생명의 능력을 보여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 더욱 큰 기쁨을 주시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는 나사로를 단지 질병에서 치유된 사람으로 살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맛보고 다시 산 자로서의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의도 로 말미암아 고난을 통한 영광을 체험하게 하시는 일이 많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믿음을 더하시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틀을 더 유하시고, 나사로의 죽음을 기다리신 것은 제자들에게 부활의 사건을 보여주시려는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15)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예수는 죽음을 보는 제자들이 완전한 절망 가운데 빠지지 않도록, 그들에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2.예수가 그의 목표를 이루는 것은 오직 사랑입니다.
예수는 사랑의 대상을 영적 시각으로 보셨습니다. 자식을 사랑하지만 육적인 시각으로 보면 단지 자녀가 이 세상에서 잘 되기만 원할 뿐입니다. 예수께서 나사로의 질병을 영적 시각으로 보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의 대상을 영적이고, 전략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예수는 사랑의 대상에게 하나님이 개입하실 시간과 공간을 인정합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내가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하실 일을 기대하며,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기다리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예수는 나사로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음을 알고,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예수는 나사로의 잠을 깨우러 가는 것처럼 행동을 합니다. 사랑은 행동입니다. 나사로에게 가려면 예수를 향하여 돌로 치려고 하던 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지만 예수는 그런 상황은 전혀 상관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위험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리고 죽음을 마치 잠을 자는 것으로 보시면서 할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3.전략적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삶을 영적 시각을 가지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질병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유대지역의 사람들을 보면서 빛을 볼 수 있고, 죽음을 잠으로 보는 것은 영적 시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드러나 있는 현상을 보며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에 있는 것,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바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믿지 않는 사람은 사랑도 인간적인 사랑만 하게 될 뿐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이 믿음이 바탕이 될 때 우리는 죽음을 잠자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바탕이 된 사랑이야말로 형제를 향한 놀라운 사랑의 행동을 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사랑의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느낌과 감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사랑의 행동은 나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는 행동이며, 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불신과 낙심이 아니라 오직 그 사랑의 대상을 온전케 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믿음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참된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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