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가 의혹의 사람이었다면 빌립은 현실적인 사람, 계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현실주의자는 눈앞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셔서 아버지를 보여주어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1.현실주의자는 예수를 보고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현실주의자 빌립은 이상주의자 예수와 함께 오래 있어도 예수를 알지 못했습니다. 만약 예수를 알았다면 자동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도 알게 됩니다. 즉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은 예수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볼로는 예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만 꼭 알아야 할 것을 몰랐습니다.(행18:25)
빌립은 겉으로 보이는 예수를 보고 있지만 숨어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사45:15) 하나님이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것은 아들을 보내심으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겉모습에 치중한 사람은 숨어 계시는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영적체험주의자는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고 싶어 합니다. 하늘의 하나님을 자기 육신의 눈으로 보고자 하는 것은 영적 체험주의자가 바라는 것입니다. 영적체험주의자인 바리새인들은 예수께 눈에 보이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영적체험주의자가 아니라 영성의 사람이 되어야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2.예수는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비전을 실행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이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비전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이루려고 오셨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일입니다. 이 뜻을 위하여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는 숨어계시는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내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잠깐 여러 모양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아들을 통하여 자신을 보여주셨습니다.(히1:1)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 아버지의 권세와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영성의 예수는 사역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는 이적들을 행하셨으나 그 모든 것에서 오직 하나님을 드러내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자기 입장에서 치유 받고, 떡 먹는 것을 원했을 뿐입니다.
3.우리는 하나님을 보는 비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현실에 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이 아니라, 보여주시는 것을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은 꿈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며, 모세는 바로의 궁중의 왕자의 신분과 권력의 힘보다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멀리 내다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벧전1:5-7에서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 등 7가지를 강조합니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영적인 눈이 건강하다는 것은 눈만이 아니라 그의 삶이 전체적으로 온전한 신앙을 가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려고 하는 것은 영적 체험주의자들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나님을 보려고 하는 사람은 비전의 사람이며, 영성의 사람입니다. 드러난 현상만 볼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이루어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와 손길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의 제자는 하나님을 보는 사람이어야 하고, 또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세상에 대해 하나님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비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