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제자들은 3년 반 동안 숙식을 함께했습니다. 마지막 유월절음식을 먹는 최후의 만찬은 가장 소중한 식사자리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자기를 파는 자와도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주님과 바른 관계에서 함께해야 합니다.
1.제자들은 예수의 식탁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유월절 의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식탁에 앉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혈통과 하나님을 섬긴다는 신앙적 형식은 있지만 진정한 유월절의 의미를 모른 체, 단순히 절기를 지키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없는 신앙적 전통과 의식은 복음과 상관이 없습니다.
의인의 자격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한 사람의 배신을 말할 때 모든 제자가 근심하며 자기의 배신의 가능성에 대해 부인했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는 결코 예수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의인의 자격으로 그 식사자리에 앉았습니다.
가면을 쓰고 참여한 사람이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이미 예수를 배신했지만 오히려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물었습니다. 거짓의 아비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는 양 다른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 식탁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2.예수는 진정한 유월절 식사를 주관하셨습니다.
예수는 자기의 희생을 통하여 유월절 식사를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식사자리를 단순히 제자들과 유월절 음식을 먹는 자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리로 만들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린양의 고기를 먹지만 예수는 그 어린양의 진정한 실체로서 자기의 몸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는 음식을 먹는 자의 내면을 보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식사자리에서 자기를 팔 제자에 대해 이야기 하셨습니다. 예수는 제자에게 죄를 생각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는 사람들이 음식에 치중하지 않고, 진정으로 생각해야 할 것에 시선과 관심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그의 식탁을 관계를 뛰어넘어 베푸셨습니다. 예수는 그 자리에 배신자가 있고, 그가 같이 그릇에 손을 넣어 떡을 집는 것도 아셨지만, 그것까지도 허용하셨습니다. 이미 깨어진 관계이지만 예수는 가룟 유다를 쫓아내지 않고, 그 식탁에 참여하도록 허용하셨습니다.
3.주님과 바른 관계에서 함께 식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주를 신뢰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관계를 맺는 일에 신뢰의 문제는 기본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의 범죄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하나님, 사람과 피조물들의 관계를 파괴해 버렸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길을 알아야 합니다. 함께 먹고 자는 시간들을 보냈다고 해서 함께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주시는 몸과 피를 믿음으로 받아먹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생명의 떡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으면 예수에게서 다 물러 가지만, 생명의 말씀이 예수께 있음을 알면 예수를 떠나지 않습니다.
예수 앞에서 가면을 벗어야 합니다. 우리의 부족함,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는 삶이 주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며, 그와 함께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는 삶이 됩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지만 늘 사람들에게 보일 외모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식사는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며 기쁨을 누리는 것이고, 영원한 천국에서 우리가 영원히 누릴 가장 큰 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