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14:1-21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은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입니다. 죽음을 알고 바르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삶과 죽음에 대한 바른 관점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바른 생사관(生死觀)을 가져야 합니다.
1.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나안 족속들과는 구별 된 사람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녀로 삼으셨습니다.(1) 아버지와 자녀의 사이에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대상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하나님이라고 했지만(요8:41) 예수는 그 하나님 아버지가 보낸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 그들의 아비는 오히려 마귀라고 하셨습니다.(요8:44)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성민으로 삼으셨습니다.(2) 성민의 개념은 거룩함입니다. 이스라엘이나 신약교회는 부정함, 더러움에서 불러냄을 받았습니다.(엡1:1) 성도들은 하나님을 떠나고, 타락한 욕심을 따라 사는 삶에서 구별된 사람입니다.(엡2:3) 예수를 믿는 자는 믿음 이전과는 다른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2) 기업이란 말은 ‘비밀히 잠가둔 보석, 특별한 소유’의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입니다.(신26:18) 교회는 하나님의 소유 된 백성입니다.(벧전2:9) 하나님의 소유 된 백성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며 하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2.이스라엘의 생사관은 가나안 사람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죽음에 대한 바른 태도가 필요합니다.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라”(1)고 하셨습니다. 가나안 족속들 즉 우상숭배자들은 죽음 앞에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의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죽음 앞에서도 과도하게 슬퍼하지 않으므로 이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갑니다.(살전4:13)
생존에 급급하지 않아야 합니다. “가증한 것은 무엇이든지 먹지 말라”(3)는 말씀은 이스라엘의 먹는 문제의 기준입니다. 먹는 문제는 생존문제입니다. 생존을 위할 때 하나님이 정하신 “가증한 것, 부정한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예수는 육의 양식에 급급해 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을 양식으로 삼았습니다.(요4:34)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먹는 문제의 결론은 “염소새끼를 어미의 젖에 삶지 말라”입니다. 가나안사람들은 맛있는 요리, 주술적 목적으로 이런 잔인한 방법을 사용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서 ‘자비, 긍휼’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갈5:13)
3.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세상 사람들과 다른 생사관을 가져야 합니다.
부활을 믿는 자로서 죽음과 그 이후를 보아야 합니다. 부활을 아시는 주님은 죽음을 말씀하실 때 “잔다”라고 표현하셨습니다.(요11:11) 죽음을 잠자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 것을 알고, 죽음 이후를 보는 것입니다. 부활과 심판이 있는 죽음 이후를 내다 볼 수 있어야 합니다.(히9:27-28)
사람의 생명의 근원이 되는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사람을 살리고 사람에게 힘이 되는 것은 육의 음식이 아닙니다. 영혼을 위해서는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 생명의 떡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요6:35) 율법의 규정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먹는 자가 생명을 얻으며, 삶의 힘을 얻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생존입니다.
삶의 핵심인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은 하나님의 속성대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람의 삶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요일4:10-11)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은 사랑이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 남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위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삶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생사관을 가져야 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생명의 핵심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사랑의 삶임을 알고 실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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